고경명 3부자 의병장 가문 전승한 씨간장 보배
장기간 농축 발효균 ‘종균접종’으로 품질 최상
다품종소량생산…유럽 백화점 입점요청 러시

370년 장흥고씨 가문 ‘씨간장’ 매력…세계시장 사로잡아

양진재종가 전경 / 사진제공 양진재종가
양진재종가 전경 / 사진제공 양진재종가
프랑스 수와송대성당 앞 다미앙 쉐프가 장담그기 시연하는 영상 / 캡쳐 이미지 종가 제공
프랑스 수와송대성당 앞 다미앙 쉐프가 장담그기 시연하는 영상 / 캡쳐 이미지 종가 제공

◇글 싣는 순서
1회 (프롤로그) 씨간장 370년 보존한 장흥고씨 가문의 큰 그림…여전히 충과 효가 비결
2회 (발효식품) 김치가 전부라니…김장문화 발효식품 열풍과 함께 유럽 수출 길 열다
3회 (문화교육) 한국음식문화를 키트에 담을 수가 … 세계적 쉐프들에게 품격을 선사하다
4회 (한옥정원) 신토불이 자연친화 대체불가 정원인가?… 한국정원을 파리에 짓는 사연
5회 (게스트하우스) 가고 싶은 한국, 자고 싶은 한옥 …열화정 찾은 유럽 손님과의 대화
6회 (축제원형) 제례가 축제(祝祭)의 진수를 찾아서 … 종합예술 한국 제례의식에 주목하다
7회 (한국병기) 세계해전사에 빛나는 거북선이 있기까지 …그 때 그 한식병기의 첨단기술
8회 (한국전통차) 의향의 향기 머금은 한국차를 아시나요?…고대로부터 다례전통 뿌리 깊은 한국 차 문화
9회 (에필로그) 종가 보존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무엇이 필요한가? … 고유성과 보편성 재발견

 

◇프롤로그
#지난 5월 30일 전남 담양 창평의 유천리 식품제조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문학강의가 열렸다. 이 마을 인문학강의는 시집 온지 52년 된 할머니가 열었다. 서울 사는 ‘28청춘’ 96세 할아버지 박사가 강사다. 전통장보존연구회 젊은 주부 30여명이 좌석을 가득메웠다. 강사는 “이제 청국장을 사랑하실 맘이 생겼습니까?”라고 묻자, “네~에”라는 돌고래 응답이 터져나왔다. 100세 앞둔 강사의 100분 열강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장면은 영화 속 장수마을인가, 천도복숭아 열린 별천지인가?

#이 집 주인인 할머니는 장흥고씨 양진재종가의 10대 종부 기순도씨로서 대한민국 제35호 식품 명인이다. 미국 CBS방송에 출연한 장면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미국 쉐프들의 장담그기 체험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외국어를 하지 못하는 종부가 기품 있고 당당하게 우리말로 설명하면 그 말을 감탄하며 경청하는 외국의 유명인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다. 대륙과 대양 저편의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이 작은 시골마을까지 찾아왔을까?

#이 집안 11대 종손 고훈국씨는 어머니인 종부를 모시고,항아리 2천여개의 초대형 장독대를 기반으로 식품회사를 설립했다. 270여종의 제품을 생산하는 프로슈머(다품종 소량생산) 회사다. “전통 장 깊은 맛을 이어가고, 그 맛을 후대에 전하는 아름다운 명인”이라고 어머니를 표현한다. 깊은 맛을 이어가자면 생산의 효율성 문제에 직면할 터인데, 오히려 파리 등 유럽시장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세계최초 백화점으로 유럽 식품문화 트랜드 핵심거점인 르봉마르쉐백화점에 입점한 후, 유명백화점과 미국 ‘아마존’에 입점해 수출시대를 열고 있다. 한국 시장을 두고 유럽시장에 도전한 동기는 무엇일까 ?

#장흥고씨 양진재종가는 뿌리깊은 충효 가문이다. 임진왜란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고인후 부자 의병장의 후손으로 400여년 창평 유천리에 세거해 왔다. 이 집안 역사와 함께한 ‘씨간장’은 대대로 종부가 관리한다. 안채에서 곳간 열쇠를 관장했던 종부가, 대한민국 명인이 되고, 이제는 유럽문화와 당당히 어깨를 견주는 획기적인 변화가 진행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남도일보 기획 취재(9회 연재)’를 통해 살펴보고 한류 세계화의 새 시대를 준비하는 시사점으로 삼고자 한다.

 

인문학강좌 ‘청국장을 사랑하면 복받습니다.’기념촬영
인문학강좌 ‘청국장을 사랑하면 복받습니다.’기념촬영

◇빛나는 충효 가문 전통
양진재 종가는 장흥고씨 14세 고세태(1645~1713)를 종가조로 12대를 이어 담양 창평에 세거하고 있다. 선대가 이 고장에 입향한 사연은 가문 전통을 알려주고 있다. 장흥고씨 10세 고경명(1533~1592) 의병장은 임진왜란에 곡창 호남을 방어하는 금산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혈투끝에 순절해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른 충신이고, 그의 둘째아들 고인후(1561~1592, 호는 학봉)도 아버지와 함께 순절했다. 살아남은 첫째아들 고종후(1554~1593)는 귀향 후 의병들을 장사지내고 아버지와 형제의 복수가 곧 나라 위한 충의라는 격문을 써서 복수의병군을 규합했으며 2차 진주성전투에서 김천일·최경회와 함께 순절했다. ‘삼부자의병장’은 포충사 등에서 추모한다. 성균관 학유를 지낸 고인후의 부인 함평이씨는 친가인 창평으로 이거해 아들 고부천(1578~1636, 호는 월봉) 형제를 양육해 창평고씨라는 별칭으로 번창하게 됐다. 고부천은 고매한 학문과 겸손·강직한 천품으로 문과급제해 사헌부장령·서장관, 세자시강원필선 겸 춘추관편수관을 역임했고 정묘호란엔 세자를 호가했고 월봉집을 남겼다. 그의 손자인 고세태는 특출한 학덕으로 통덕랑을 역임하고 7남매에게 재산을 나누는 기록을 창평관아에서 인증받은 분재기(전남 유형문화재 제342호) 등 유적을 남겼다.
 

고세태분재기(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42호)
고세태분재기(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42호)

◇보배 반열에 오른 씨간장
가문 자료가 입증한 씨간장 나이는 370년이다. 이화여대 이종미 명예교수는 씨간장을 가문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 종부는 가문의 대를 잇는 것과 마찬가지로 씨간장이 바닥나지 않도록 생명처럼 관리한다. 종부에게서 종부로 대물림하는 씨간장은 새 장 담그기나 제사·명절 음식 조리에 소량씩 덜어서 사용하고, 줄은 양만큼 가장 좋은 진장으로 채워주며 유지 보존한다. 이 과정에서 장은 농축되고 발효균 작용도 장기간 지속돼 최고의 품질이 된다. 오래묵은 양질의 내염성 발효균을 햇간장에 접종시켜 주는 방법을 과학에서는 종균접종이라 한다. 370년 간 발효균이 작용된 씨간장은 선조의 지혜가 담긴 보배의 반열에 오른다. 씨간장을 52년간 관리해 온 기순도 명인은 2017년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한국방문 때 화제가 된 일을 기억한다. 음식을 준비하던 청와대에서 씨간장을 요청해 왔으나 아깝기도 하고 전례가 없어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소주병만큼 나눠줬는데 가격을 물어왔는데 가격을 따질 수 없으니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씨간장을 사용한 한우갈비찜은 대호평을 받았고, 사용한 씨간장 사연이 화제가 돼 미국 역사보다 더 오래된 장이라며 미국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고 한다.
 

미국 REVERIE 쉐프팀 체험사진(조니스페로 쉐프가 만든 장단지) / 종가 제공
미국 REVERIE 쉐프팀 체험사진(조니스페로 쉐프가 만든 장단지) / 종가 제공

◇종가 보존 한국문화 세계화 힘써
한국농수산유통공사 파리지사는 2021년 12월 유네스코본부 레스토랑에서 ‘한국발효식품의 미학’이라는 홍보행사를 개최하고 기순도 명인을 초대했다. 이 때 유네스코는 항아리 단지에 담아간 씨간장을 유네스코본부 금고에 보관해 줄 정도로 예우했다고 한다. 근자열 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 했는데 ‘원자열’이 시작된 셈이다. 프랑스 르봉마르쉐 백화점 입점을 계기로 전통발효식품 제품의 유럽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베아슈베 백화점, 갤러리 라파에트 등에도 판로가 개설되고 미국의 ‘아마존’ 입점도 시작됐다. 종가는 딸기고추장을 개발하는 등 다품종소량생산을 유지하면서 감동을 전하고 전통 발효장 문화체험을 확대하며 전통 항아리 등 인근 종가의 수출을 돕는 등 한국 전통 종가문화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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