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법무법인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맥 변호사

A(남편)와 B(처)는 1993년경 백년가약을 맺고 혼인 생활을 시작했다. A와 B는 혼인 생활을 영위하던 중 장녀 C(1994년생)와 차녀 D(2000년생)를 출산하였다. 그러던 중 A는 P(상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외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A와 P는 Q(장남, 2006년생)를 출산하였다. 이후 A는 2017년경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상간자인 P는 사망한 A를 화장한 뒤, 그 유해를 X 봉안당에 봉안하였다.

A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법률상 배우자 B와 장녀 C, 차녀 D는 상간자인 P를 찾아가 A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P는 장남인 Q와 함께 A의 제사를 치르겠다며 유해의 반환을 거부했다. B, C, D는 X 봉안당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유해의 반환을 요청해보기도 하였으나, 봉안당은 계약자인 P의 동의 없이는 유해를 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결국 B, C, D는 A의 유해를 돌려받기 위해 P와 X 봉안당을 상대로 유해의 인도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위 사례에서 B, C, D는 P와 X 봉안당으로부터 유해를 인도받을 수 있을까? 과거 대법원이 판시한 법리에 따르면 B, C, D의 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유해의 관리자는 ‘제사 주재자’, 쉽게 말해 가족 내에서 주로 제사를 지낼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람이 된다. 한편, 민법에는 제사 주재자에 관한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사 주재자가 누구인지는 대법원이 세운 나름의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왔다.

제사 주재자에 관한 대법원의 기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뀌어왔다. 과거에는 오로지 ‘남성’만 제사 주재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가(대법원 1997. 11. 25. 선고 97누7820 판결 등), 호주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는 여성을 포함한 공동상속인들의 협의로 우선 제사 주재자를 정하고, 만약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원칙적으로 장남 또는 장남의 아들(장손자)이 제사 주재자가 되며,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판단한 뒤(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최근까지도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재사 주재자가 결정되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B, C, D가 제기한 소송의 1, 2심 재판부 역시 B, C, D의 유해 인도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이 판시한 종전 기준에 따르면 A의 공동상속인인 B, C, D, Q 사이에 제사 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사 주재자는 장남인 Q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2008년에 선고된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원칙적으로 장남 또는 장손자를 제사 주재자로 보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제1항 및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성립과 유지를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여성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진 경우이거나 아들이 없는 경우에만 제사 주재자가 될 수 있으므로, 아들이 있는 이상 장남의 동의 없이는 여성이 제사 주재자가 될 수 없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기준이 남성 위주의 가계 계승에 바탕을 둔 제사에 대한 관념적인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차별적 기준이라고 비판하면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 주재자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판시한 새로운 기준에 따를 경우, 위 사건에서 제사 주재자는 A의 직계비속 중 연장자인 C가 될 것이므로, B, C, D는 P로부터 A의 유해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위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제사를 딸을 포함한 ‘자녀들’에게 돌려줬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기존의 관습을 타파하고 진정한 성평등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하겠다. ※본 칼럼은 2023년 5월 11일에 대법원이 선고한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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