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민(법무법인 맥 변호사)

 

송진민 법무법인 맥 변호사

정년이 된 A씨는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후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1톤 트럭을 구매했다. 새롭게 시작한 일이 손에 맞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A씨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최선을 다해 일에 전념했다. 힘든 업무 속에서 A씨를 달래주는 것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마시는 ‘혼술’이었다. 고생한 A씨를 위해 아내가 차려준 술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면 그날의 피로가 모두 가시는 듯했다.

A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11시경 소주 1병 정도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오전 6시 반쯤 일어난 A씨는 오전 7시경 트럭을 몰고 일터로 출발했다. 트럭을 운전하여 일터로 향하던 A씨는 이른 시각 숙취 운전 단속을 시행하던 경찰관들로부터 음주 측정 요구를 받았다. 측정 결과 A씨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35%인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밝혀졌고, 현장에 있던 경찰관은 A씨에게 “운전면허 정지 수치입니다. 곧 경찰서로 불러 조사를 할 것이니 조사에 응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을 안내받고 대리기사를 불러 귀가하게 되었다.

며칠 뒤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출석한 A씨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을 시인하였다. A씨를 조사한 경찰관은 A씨에게 운전면허에 관한 얘기는 따로 하지 않고 조사를 마쳤다. 경찰관으로부터 운전면허에 대한 안내를 받지 않고 집에 돌아온 A씨는 운전을 해도 되는지 궁금했고,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운전면허에 관해 물어보았다. 친구는 “경찰서에서 운전면허 정지 기간을 정해서 통보가 올 테니, 거기 적힌 기간에만 운전하지 않으면 되고, 지금은 운전해도 된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친구의 말을 믿은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운전면허 정지 통보를 받기 전에 생활비를 벌어놓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중 A씨는 안전거리를 준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늦게 밟는 바람에 앞차를 들이받는 추돌사고를 일으키게 되었고, 추돌사고 조사 과정에서 종전의 음주운전으로 A씨의 운전면허가 이미 정지된 사실이 밝혀졌다. 사정을 알고 보니 A씨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이후 A씨의 운전면허 정지 처분이 결정되고 이러한 내용이 경찰의 전산에는 입력되었지만, 알 수 없는 사정으로 A씨에게 운전면허 정지 처분 사실이 고지되지 않았고, 자신의 운전면허가 정지됐다는 사실을 몰랐던 A씨는 계속 운전을 해왔던 것이었다.

검사는 A씨가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운전하여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및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자신의 면허가 정지된 사실을 통보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무면허 운전으로 처벌받는 것이 억울하고, 교통사고 피해자와 이미 합의를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에게 어떤 판결을 선고했을까?

위 사례에서 법원은 A씨의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죄는 운전면허를 받지 아니하고 자동차를 운전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유효한 운전면허가 없음을 알면서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고의범인데, A씨는 자신의 운전면허가 정지된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A씨에게는 “무면허 운전의 고의가 없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죄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르면 피해자와 합의하였을 때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무면허 운전에 해당하면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A씨에게 무면허 운전의 고의가 없었던 이상 역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사례는 형벌을 가함에 있어 죄형법정주의가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행정처분의 효력에 있어 ‘적법한 통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례에서 A씨가 잘못한 사정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법은 언제나 원칙에 따라 적용되어야 하고,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수범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본 칼럼은 2023년 6월 29일에 대법원이 선고한 2021도17733 판결의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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