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장동에 문 연 ‘예술공간 집’

50년 된 한옥의 변신…‘삶과 예술’ 호흡을 불어넣다
동구 장동에 문 연 ‘예술공간 집’
문희영 대표 사재 털어 옛집 개조
개관 기념전 ‘다시 호흡하는 시간’
“오래된 작품들 다시 보여주고파”
 

최근 동구 장동에 개관한 ‘예술공간 집’

누군가는 세상의 첫걸음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세상과 이별하기도 하는 곳. 한 가족의 삶이 시작되기도 분리되기도 하는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

집에서 겪는 삶의 일련의 사건들은 개개인에게 특별하지만 모두에게 벌어지는 평범한 일이기도 하다.

예술도 집과 같다. 심오하고 난해한 예술도 그 근원에는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 동구 장동 전남여고 정문 앞 골목에 ‘예술을 품은’ 집이 문을 열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낡은 서까래와 누군가 수없이 들락거렸을 낡은 문이 50년 된 집의 역사를 한 눈에 말해주는 듯하다.

한옥의 정취를 멋스럽게 살린 이 곳은 미술가로서 꿈을 꾸고 실현해나간 문희영 관장의 추억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머물러 있는 공간이다.

처음 그림을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조선대 미대에 진학할 때까지 10년 인생이 녹아있는 문 관장의 옛 집이 ‘예술공간 집’이라는 새 옷을 갈아입고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안식처로 변모했다.
 

낡은 서까래와 미닫이 문을 그대로 살린 안채는 전시공간으로 바뀌었고 마당 한 켠에 자리했던 작은 창고는 커피숍으로 만들어졌다.

문 관장은 이 곳에서 ‘아트 브런치’ 형식의 미술사 강의를 비롯해 소규모 강좌,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이 곳에서 내년 초까지 진행되는 개관전 ‘다시 호흡하는 시간’은 ‘예술공간 집’의 취지를 엿볼 수 있어 인상깊다.

그녀가 20대 시절부터 좋아하고, 마음 속 깊이 담아뒀던, 그래서 다시 한번 세상 밖으로 나와 빛날 수 있는 오래된 작품들을 꺼내왔다.

지금은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는 정선휘 작가의 ‘삶 속에서 새벽을 열다’(2001년 작)는 반가운 작품이다. 2001년 겨울의 어느 날 푸르스름한 새벽녘의 따스함을 캔버스에 담아 내며 회화에 몰두했던 정 작가의 당시 작품세계를 아련히 떠올리게 한다.

1992년, 손에 익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찾아 다녔을 박일구 작가의 사진에는 광주의 철길 건널목, 주택가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구멍가게 등 사라져버린 풍경과 못내 아스라한 기억이 공존한다.

빈집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조현택 작가는 인간의 욕망이 일궈낸 매끈한 도시풍경의 이면에 폐허로 남은 풍경을 담아냈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안과 밖이 공존하는 풍경은 집이 가진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 공존했을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라는 듯 보여준다.

임현채 작가는 집 안의 삶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이야기를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임 작가는 철저히 엄마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봤다.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장난감들,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모아낸 테이프 한땀, 돌아서면 수북하게 쌓이는 빨랫감들은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집, 꿈, 숲’이라는 단어가 연속 반복되는 정승운 작가의 작품은 집이 가진 의미를 곱씹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특히 공성훈 작가의 ‘먼지그림’(1996년 작)은 문 관장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접한 이 작품은 그에게는 ‘꼭 다시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였다.

실제 작가가 거주하던 집의 먼지를 모아 그려낸 이 작품은 멀리서 봤을 때 꽤 그럴싸한 풍경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결국 눈 앞에 작은 알갱이들에 개어진 물감덩어리만 보이게 된다. “어찌 보면 세상에 가장 영원한 것은 먼지가 아니겠냐”고 말하는 공 작가의 말처럼 삶의 방식이 아무리 변해가도 사라지지 않을 집이라는 존재와 꽤 맞닿아 있다.

이 밖에 조병철 작가의 ‘봄손님’, 조윤성 작가의 ‘씨앗으로부터’ 등 흥미로운 작품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희영 관장은 “제 삶과 꿈이 담겼던 이 곳이 예술공간으로서 다시 호흡하는 것처럼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은 옛 작품들을 끄집어 내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호흡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며 “저만의 꿈과 시간이 담긴 곳이 아닌, 이 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062-233-3342)
/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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