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36)꽃과 바람
<제4화>기생 소백주 (36)꽃과 바람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것은 기생 소백주에 대한 상호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최대한의 존중과 예우가 우선된 마음의 자세였다.
평생 글공부만 해온 선비가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고 돈으로 벼슬을 사려고까지 했으니 갈 데까지 간 타락한 인생임을 김선비 스스로도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한탄했다고 한다면, 소백주에게 한잔 술을 얻어 마시고 그 술값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최초로 그 글에 대한 값을 매김 하는 숭고한 행위라는 것을 김선비 스스로가 문득 깊이 자각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결코 기생이니 뭐니 하는 대상을 따지지도 말 것이며, 또 결과에도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했다.
김선비는 심란한 마음을 가다듬고는 쓱쓱 한지를 메워가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용틀임하는 감정을 붓 끝에 담아 거침없이 휘갈겨 써 내리는 것이었다.
봄날 새싹이 눈을 비비듯 여름날 홍수가 장대비로 쏟아지듯 가을날 찬바람이 살을 에듯 겨울날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듯 붓끝은 때론 빨랐다가 또 때론 멈추었다가 그 마음속에 떠오르는 산과 강과 하늘과 바람과 물상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윽고 김선비는 붓을 쓱 거두었다. 그리고는 일하는 아낙을 불렀다.
“여봐라! 술값 여기 있느니라!”
“예에! 나리!”
집안에서 일을 하는 아낙이 달려와 김선비가 주는 글을 받아들고 소백주에게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물끄러미 문틈으로 사내의 꼴을 바라보고 있던 소백주는 하인이 가져오는 글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여느 때 같잖게 떨리는 마음으로 소백주는 김선비가 쓴 글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멋들어지게 휘갈겨 쓴 글씨의 모양새가 물 흐르듯 유연했다. 어려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수 십 년간 갈고 닦아온 유려한 솜씨였다.
하긴 그런 유려한 글 솜씨를 보인 사내가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러기에 인간의 인연(因緣)은 까닭 없이 홀연 오는 것이고 또 마음속에 좋고 싫음이 생겨나는 것 또한 제각각이라서 그것은 그야말로 제 마음 내키면 그만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뉘라서 저 소백주의 마음 내키는 뿌리를 알랴! 소백주의 마음 내키는 까닭을 알기만 한다면 그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지어 그 마음에 들면 그만일 것이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소백주 자신도 모르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듯 인연은 봄날 꽃잎에 바람 휘돌아가는 숱한 사연만큼이나 속절없는 것이었기에 그 깊이를 헤아릴 길 없었다.
그런 알 수 없는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사람들은 인연이라고 했고 또 그것을 운명이라고 했던 것이다. 과연 김선비와 소백주는 그런 인간으로서의 진한 인연의 사슬이 어쩌면 둘 사이에 운명처럼 짙게 드리워진 것이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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