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가?

참 많이도 흘렀다. 한때 우리의 피는 뜨거웠고 정의에 목말랐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지금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간절함과 버금가지 않았을까 싶다. 타는 목마름으로 저항했던 그 시절,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그랬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삶은 죽음이고 죽음은 삶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에 31년 전 “2만 학우 단결투쟁”을 외치던 박승희 열사가 떠오른다. 기자 초년시절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를 열었다. 취재수첩 날짜는 91년 4월 29일로 적혀있다. 이날 전남대학교 2학년 박승희 양이 분신했다. 그로부터 21일 뒤, 박승희 학생은 타는 살가죽의 고통, 목구멍을 통해 들어온 화기를 이기지 못하고 전남대병원에서 숨졌다. 살려야 한다는 마음속에 차라리 죽은 것이 낫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취재하는 동안 기자가 느꼈던 것은 아픔이었고 고통이었다. “조그만 참아, 괜찮아” 그때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박 양의 고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김지하 시인은 “젊은 벗들”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칼럼을 썼다. 젊은이들의 분신투쟁을 굿판으로 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명지대 강경대군이 곤봉에 맞아 사망하자 청년 학생의 분신투쟁이 이어졌다.

박승희 학생의 분신에 이어 5월 1일에는 안동대 김영균 군이, 3일에는 경원대 천세용 군이 분신했다. 천세용 군은 몸에 불을 붙인 뒤 6m 아래로 뛰어내렸다. 8일에는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가 분신했다. 김기설 씨는 원진레이온 사태를 사회 쟁점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는 노 정권의 반민주적, 반민중적인 본질을 세상에 알리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10일에는 광주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윤용하 씨가 분신했다. 18일에는 이정순 씨가 강경대 열사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연세대 앞 철교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투신했다. 그리고 5·18기념 행사 도중 보성고 김철수 군이 분신했는데 고향 후배인 김 군의 분신을 괴로워하던 정상순 씨가 전남대병원에서 투쟁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학생 청년의 분신투쟁은 6월까지 이어졌다. 당시에 국가폭력이 분신투쟁을 불렀고 분신투쟁은 대중투쟁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때 김지하 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내용이다. “오적”을 쓴, “타는 목마름으로”를 쓴 그 손으로 이 같은 글을 쓴 것이다. 민주화를 열망하던 청춘들은 하나둘 안타깝고 황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데…

물론, 그 시절 비극의 역사를 주도한 인간들은 아직도 천막 뒤에 숨어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의 한 페이지는 이제 기자의 낡은 취재수첩에 갇힌 채 잠시 그때를 회상해 보는 과거시제에 머물러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솔아 푸르는 솔아” 그리고 “타는 목마름으로”는 각자의 위치에서 민주화를 외치다 힘에 부치면 다 같이 모여 부르는 힘을 키우는 동력의 노래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렀고 안치환, 김광석 그리고 최근에는 박창근 가수가 불렀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하고 회상에 젖곤 한다. 우리들의 젊은 시절은 왜 그리 처절했을까. 쓰리고 서러웠고 아팠을까.

5·18 42주년, 그리고 박승희 열사의 기일인 오늘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흥얼거리면서 생각에 빠진다. 모진 탄압과 곤봉 앞에서 숭고한 민중들이 만들어낸 자유 민주주의는 지금 강건할까. 역사는 그 시절 그렇게도 목말라하던 아니 그렇게도 꿈꾸던 대동세상으로 잘 가고 있는 것일까. 가고 있다면 어디쯤 가고 있을까. 42년 전, 만개하지 못한 선홍빛 꽃잎들은 그렇게 떨어져 짓밟히고 죽어갔고 차마 죽지 못한 목숨은 죽은 듯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정권이 바뀌고 바뀌어 윤석열 정권까지 왔는데 지금도 가슴에는 풀지 못한 덩어리가 남아 가끔씩 울컥하며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백골단에 치를 떨던 그 시절, 마음속에 자리한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어쩌면 치우쳐있을지도 모르는 정의로움에 대해 양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응답하라” 지금도 넌 죽음을 앞둔 살이 타는 고통, 박승희 열사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위한다. 그래도 그때를 기억하는 취재수첩은 버리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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