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준영이 형! 세월이 약이라고 했지? 살다 보면 망각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했잖아.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비통함이 시간이 갈수록 얕아지는 것 같아서 형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그런데 말이야. 잊을 수가 없어. 세월이 가면 해결된다는 말, 그 말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거짓말이 분명해. 나에겐 잔인한 12월, 이때가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픈 가슴을 달래야 하거든.

이태원 희생자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봐.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어버린 황망한 사건이잖아. 그들의 가족은 사고 당시에 머물러 있는데, 시간이 약이 될 수 있을까? 잊을 수가 있을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 위로의 말인지 알면서도 그 말이 망각이라는 바리케이드를 넘어 잠재의식까지 파고들어 와, 온몸을 점유하는 것 같아 듣기 싫어. 그래서 더 서글퍼지기도 하고…

형! 치매라는 병 알지? 사람들은 치매를 두려워하잖아. 치매에 걸리면 자식들 고생시킨다면서 많은 사람이 걱정을 미리 하는데, 이 ‘치매가 괜찮은 병’이라고 한다면 궤변이라고 하겠지. 형이 자주 하는 말처럼 ‘또라이 같은 생각?’ 그런데 말이야 손발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노쇠한 저의 어머니에게 찾아온 치매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정신은 말짱한데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다고 생각해 봐. 모기가 피를 빨아 가려운데도 모기 하나 쫓지 못하는 무기력 함, 이 같은 형벌이 어디 있겠어?

우리는 잇따른 참사 때문에 올바른 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하고 있어. 육체와 정신이 멀쩡한데도 손을 쓰지 못하는, 그래서 오는 수치와 안타까움, 무능함에 대한 자기학대의 경험을 맛보고 있잖아. 차라리 치매라면 기억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겠어! 지난 8월 집중호우 때 방에 빗물이 들어와 숨진 서울의 반지하사건, 40대 두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수원의 세 모녀사건, 승용차와 함께 바다로 돌진한 완도 앞바다 일가족사건 같은 참사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말이야, 참사로 빚어진 안타까운 죽음은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으니, 유독 나만 그럴까?

형이 막걸리 먹으면서 그랬잖아! 치매를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들, 그들이 희망하는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바람을 권력자들이 귓등으로라도 들으면 참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망각하고자 하는 이유 첫째는 먹고살기 바빠서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나와는 상관없다고 애써 치부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라고…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일,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 그래서 남의 일로 치부하려는 생각이 뭉쳐서 그렇다고…

그런데 형! 그때는 형 말에 맞장구를 쳤는데 지금은 아냐. ‘나’라는 1인칭에서 보면 그 말이 어느 정도 합리성은 있어. 하지만 정부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달라. 참사를 생각하면 무력감이 엄습한다는 말은 맞아. 국가조직을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이 ‘정의’와는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는 데서 오는 실망, 그 실망이 불러온 억지 망각! 걸핏하면 합동분향소가 설치되는 참사가 참사를 뒤덮다 보니 ‘인지부조화’나 ‘공황장애’ ‘조울증’에 빠지게 돼 습관적으로 잊도록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거고…

그래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책임자들의 무책임과 변명에 마음은 찢기고, 불신은 커지고. 형도 그러지? 잊는 것을 반복하면서 제아무리 큰 참사가 와도, 나만 별일 없다면 ‘셧다운’을 외치는 거대권력에 순응하면서 적응하며 살면 그만일까?

문제해결의 시작은 진상을 규명하는 데서 출발하잖아? 5·18도 그렇고, 분신도 그렇고, 고문치사도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진상을 규명하라고 했고 학살자를 처벌하라고 했잖아. 이태원 참사도 그래, 이유를 모르니까 물어보는 것이고…

답이 없으니 갈등은 커지고 국론은 갈라지고, 그래서 더 비통스러운 거고. “그렇지 않아?” 세월호참사도 명명백백하게 진상규명이 안 됐잖아. 그래서 참사가 또 일어난 것이고.

형! 처절했던 과거 기억을 억지로라도 박제하라고 했잖아? 학창시절 형과 밤샘 만들었던 유인물, 그 유인물을 빼앗기고 허탈해했던 기억, 백골단의 방망이, 최루가스, 공포의 지하실 모두 과거시제로 박제했는데… 그런데 요즘 들어 그때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으니! 이유가 뭘까? 지금 일어나는 과거와 비슷한 모습들, 그것들이 박제된 기억을 복구하도록, 그렇게 만들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준영이 형!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 잊지 않고 있어.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어.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진상규명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이제 화두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그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기에 참사 관련 책임자들에게 정중히 묻고 싶어. “넥타이 풀고 거리로 나서야 해결되는 일인지요?” 무수한 참사에 종지부를 찍을 방안, 집단적 인지부조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벗어날 방안이 뭔지? “응답하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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