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다가오는 총선에서 버려야 할 4가지!

불안하다. 나만 그런가? 미국이 예멘을 공격하고 후티 반군은 홍해를 통과하는 선박을 괴롭힌다. 드론공격으로 3명이 사망한 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보복을 시작했다. 후티의 바람잡이 이란은 한판 붙겠다는 태도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필사적이다. 중동이 불안하다. 지금 나라 밖은 전쟁과 기후위기로 인간적 자존감이 허물어지는 위기상태다.

그럼, 국내는 괜찮은가!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고 원색적 발언으로 불안을 키우고 있다. 와중(渦中)에 대만을 놓고 ‘중국이 미국을 향해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서로에게 견제구를 던지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시나리오를 보면 대만 유사시 미국의 ‘중국 공격 최전진기지’는 대한민국의 평택이다. 만약 평택에서 미군 폭격기가 뜨고 미국이 본토에서 장거리 미사일로 공격하면 중국의 선제타격 목표는 어딜까! 평택 미군기지? 우리의 영토가 되면 안 되는데…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국내 정치는 불감증에 걸린 듯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천박한 진영 논리에 빠져 잘난 척 떠드는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 솔직히 희망보다는 불안하다. 그래도 군사독재, IMF 시절에는 희망이 있었다.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희망,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꿈, 말이다.

지금은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데도 존중과 상생은 매몰된 지 오래고, 오로지 당선을 위한 패거리들의 득실거리는 포퓰리즘만이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 권력을 갖기 위해 곡필아세(曲筆阿世)하는 주구(走狗)들이 판치고,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나그네쥐(Lemming)처럼 떼거리로 줄을 서서 추종한다. 여기에 패거리 싸움에 눈치가 발달한 일부 언론이 주요 구성원으로 가세해 판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레드헤링’(red herring)이라는 게 있다. “사냥개가 붉은 청어 훈제냄새에 사냥 본연의 목적을 놓치는 것”으로 논리학에서 나온 말이다. 주의(主意)를 딴 곳으로 돌리는, 말하자면 엉뚱한 말로 논점을 흐리게 하는, 그래서 듣는 이의 판단을 헛갈리게 만드는 오류(誤謬)를 말한다. 최근 들어 이 현상이 정치권에서 자주 보인다.

공약만 해도 그렇다. 공약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간판을 걸었으면 살려내는 방법이 와 닿아야 한다. 하지만 내건 간판만 화려하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치켜세우기에 바쁘고 다른 쪽에서는 ‘덜떨어진 꼭지’ 취급하며 흠집 내기에 혈안이다. 국민이 보기엔 도긴개긴인데, 상대를 향한 비방뿐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탈당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변명의 아이콘(icon)이 돼, 표(票)만 의식한다. 국민 이해보다는 사소한 감정을 링 밖까지 끌고 나와 설전을 벌이기 일쑤다. 반드시 ‘승리해 맛을 보이겠다’는 결기에서 본질을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누가 이긴지 지켜보라는 오기(傲氣)만이 난무한다. 참으로 쓰잘머리 없는 ‘국민 불쾌감 유발자’들이다.

더 얄미운 건 사이비 언론이다. 논쟁의 본질보다는 포퓰리즘 전달에 바쁘다. 한쪽에 치우친 패널은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혈안이다. 자기 진영이 아니면 적(敵)이라도 되는 양, 여과 없이 ‘아무 말 잔치’를 열어 놓고 방관한다. 공정한 장치, 오물을 걸러내는 기본 깔때기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냥개가 본래의 사냥은 안중에도 없고 청어 냄새에 빠지는 오류, 언론이 이 오류를 즐기는 듯하다.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는 선수들은 따로 있다. 선거 때마다 줄서기로 이득을 보는 자(者),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 입에 오르면 옳은 것도 그른 것으로 희석되고 만다. 듣는 이를 오염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예를 들어 ‘핵 논쟁’에서 ‘갑’이라는 패널이 핵에너지의 위험을 말한다. 그런데 ‘을’이라는 패널이 “그러는 당신은 감전으로 해마다 수천 명이 죽은 사실을 아는가?”라며 봉창(封窓) 뚫는 이야기를 꺼낸다.

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든 위험한 것인데, 핵에너지의 효율을 논(論)하다가 뜬금없이 감전사를 끌어들여 논점을 흐린 것이다. ‘을’도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문제는 ‘을’이 ‘갑’의 주장과는 관계가 덜한 이슈를 끌어들여 관심을 분산시켜 버린다. 이게 ‘레드헤링’이다.

‘레드헤링’에 말려 그럴듯한 냄새를 따라갔다가는 현실의 자신을 죽이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도리안처럼 될 것이다. 나라도 국민도 결국에는 망하는, 단물 빠진 껌 신세가 된다는 이야기다. 양심과 염치를 찾기 힘든 강자의 장난에 꼭두각시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버려야 한다. 먼저 진실과 논리를 포기한 자를 버려야 하고, 하찮은 것에 목숨 건 꾼들도 마찬가지다. 거짓 더하기에 분주한 정치인도, 편향된 언론도 포기하는 게 맞다. 이젠 강대국의 싸움에 등 터지지 않은 한반도를 설계하는 자, “나라를 위해 뛰는 몸, 힘들다는 말은 핑계”라는 손흥민처럼 자신을 채찍질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4월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미미(微微)하지만, 정중히 외친다. 양심의 최후 지킴이 유권자들이여! 존재의 의미 그 자체인 국민이여! “응답하라” 버릴 준비는 됐는가! 됐다면 행동하자.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