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제발, 그만 싸워라. 불쾌하다!

사리(事理)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숙맥(菽麥)이라고 한다.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이는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온 말로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최근 이 숙맥이 정치인들의 설전 땜에 증식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면 콩이 보리 같기도 하고 콩 같기도 하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리석다’는 증식이 일어나 자기도 모르게 ‘숙맥’이라는 늪에 빠지고 ‘뭐든 되겠지’라는 자포(自暴)상태에서 ‘케세라세라’(que sera, sera)를 중얼거리는, 결국 스스로 ‘될 대로 되라’식의 방관을 자처하는 ‘자기학대’ 에 이를 지경이다.

검증이 안 된 사안은 일단 의심하는 것이 상식이다. 폭우로 침수가 의심스러우면 지하차도를 차단하는 게 맞다. 고속도로 논란도 그렇고 오염수도 마찬가지다. 검증이 됐다 하더라도 믿거나 믿지 않는 것, 헷갈리는 것은 본인의 몫이지만 의심을 통한 방안을 찾는 것은 상식이다.

KBS 수신료만 해도 그렇다. 분리징수를 놓고 한쪽에서는 국민 부담을 더는 것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방송장악이라는 주장을 편다. 한쪽은 숙이고 한쪽은 맥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불통만 보인다.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 어린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윙윙’거리는 소음(騷音) 취급을 한다. 그러니 방통위원장 선임, 공영방송 미래비전 같은 충언이 들리겠는가.

어찌 방송뿐인가! 후쿠시마 오염수도 그렇다. 여당은 바다에 버려도 된다고 하고 야당은 안 된다고 한다. ‘엄마부대’ 대표는 일본까지 건너가 오염수 방류를 지지한다며 목청을 키운다. 국무총리는 마시겠단다. 보건복지부장관, 질병관리청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마셔도 된다고 한다. 다행이다. 이들이 마신다고 하니 국민이 마루타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어떤 행위도 하지 말라고 배웠다. 해양수라는 공공재를 오염시키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괜찮다’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해(害)가 없다면 뭐 땜에 1㎞나 되는 터널을 뚫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바다에 버리는가? 자국민은 피해보상을 하면서 인접국인 우리에게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이것들이 진짜 숙맥 취급하고 있으니 천불이 난다.

참으로 해괴하다. 과학을 만사형통처럼 말한다. 어떤 국회의원은 수조에 담겨 있는 물을 마신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물론 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보이지만 그렇게 안전하다면 그냥 자기 집 식수로 써라.

숙맥은 고속도로 논란에서도 양산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종점 변경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의혹이 제기되자 장관이 갑자기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백지화하겠다” “장관직을 걸겠다”면서 격앙된 모습을 보인다.

이게 화낼 일인가. 툭하면 ‘직을 걸 테니, 너는 뭘 걸겠냐?’식이다. 이는 꾼들이 하는 도박과 같다. 장관들이 왜 내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뱉는 말의 행태가 초등 수준이다.

제기한 의혹이 근거가 없다면 해명하면 된다. 꼬리가 밟힌 지렁이처럼 온몸을 비트는 반응은 관료의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1조 8천억 원이 들어간 국가기간사업을 장관이 화풀이하듯 처리하는 것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여당 주장대로 야당이 사과하든지, 야당 주장대로 국정조사를 하든지 빨리 매듭을 풀어라.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자들이 숙맥을 만드는 주범이다. 국민이 숙맥이면 이득은 누가 차지하겠는가! 권력을 쥐는데 용이하다고 판단한 자들, 카르텔을 지키고 주구(走狗)처럼 따르는 것을 능력으로 인정하는, 바로 그들이다.

진나라 황제인 호해 곁에는 조고라는 신하가 있었다. 참고로 호해는 세습(世襲) 땜에 꼭지가 덜 떨어진 황제이고 조고는 간신(姦臣)이다. 이 간신배 조고가 사슴(鹿)을 황제에게 바치며 말(馬)이라고 했다. 황제가 의문을 제기하자 조고는 신하들에게 묻자고 했다. 답변에 나선 신하들은 사슴이 맞는데도 말을 잘못하면 죽음이기 때문에 어떤 신하는 침묵했고 어떤 신하는 말이 아니기에 사슴이라고 했다. 다른 신하는 사슴과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 행세를 했다. 이 처세(處世)에서 누가 살았을까? 숙맥이다. 하지만 숙맥이 판쳤던 진나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상식이 사라지고 정상은 비정상이 되고 강자의 말이 정의가 되는, 참(眞)이 거짓에게 당하는 권모술수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숙맥을 양산하는 기술자들의 설레발에 언론이 먼저 숙과 맥을 분별해야 한다. 언론이 정신 차리지 못하면 이를 이용한 정치권력의 기세는 더 할 것이고 간신배가 인정받는 숙맥세상이 될 것이다.

국민은 콩과 보리뿐만이 아니라 깨, 쌀 그 어떤 것을 섞어도 구별해 내는 현명함이 있다. 결코 숙맥이 아니다. 민생은커녕 콩과 보리로 나누는 정치, 폭우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놓고 남 탓하고, 이슈마다 싸우는 정치에 넌더리가 나 있을 뿐이다. 도대체 교사의 극단적 선택, 죽음의 지하차도를 차단하는 민생, 진실보다 우선한 것이 뭔가! “응답하라” 숙맥이 설치는 나라 오래 가지 못한다. 제발, 그만 싸워라.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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