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너 따위가 왜 그걸 나에게 물어?
무척 거슬린다.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언행이 그렇다. 유독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남의 탓하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 윗분의 눈치에 길들어지는 그들이, 마치 한쪽 더듬이가 떨어진 개미처럼 보인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샌덜은 ‘트럼프 현상’의 원인을 엘리트의 오만불손(hubris)에서 찾고 있다. 샌덜은 “미국 역사에서 지금과 같은 오만한 엘리트는 없었고, 공동체에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가안보실 한 관료의 태도를 보면 남의 나라 이야기할 처지가 못 된다. 이 관료는 도청문제로 미국공항에서 만난 한국 특파원들에게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 같은 주제로 물으면 저 갑니다.” 불만 가득한 투(套)로 말하고 실제로 기자들을 뿌리쳤다. 마치 “너 따위가 왜 그걸 나에게 물어?”라는 식이다.
그는 정부의 고위 관리다. 국비를 쓰고 국민의 세금으로 녹(祿)을 받는다. 그런 그가 마치 조폭처럼 눈을 흘기고 기자의 질문을 끊고 되받아치는 모습을 보면 겸손은커녕 엘리트 중에서도 격이 다른 엘리트로 보인다.
검사 출신 엘리트로 불리는 장관은 어떤가? 고위 관료의 품위유지보다는 “건들면 물어버린다”식이다. 언론은 물론 국회의원 질의에 되받아치기로 나온다. 야당 의원들이 “무성의한 ‘마음대로’식 답변”이라며 “오만방자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전쟁이 일어나도 죽이지 말라는 UN의 주문 때문인가? 요즘 인력증원 문제로 또다시 쟁점에 오른 의사들도 오십보백보다. 물론, 의사는 관료는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초기 공공의료 인력충원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때의 성명을 보면 기(氣)가 차다. “전교 1등을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실력은 모자라지만 추천제로 입학한 의사 중에서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지” 묻는다. 이들에게 “챗GPT가 일본의 의사 면허증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전하면 좀 더 겸손해질까!
대장동 사건의 녹취록에 나와 있는 50억 클럽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200억까지 요구했다는 전 특별검사, 엘리트 집단과 부동산 카르텔이 결합한 이 사건 중심에 엘리트 중에서도 파워 엘리트들이 있다. 이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참으로 민망스러운 오만한 엘리트의 궤변이다.
국회 상임위 활동기간 가상화폐 투자로 치부를 드러낸 젊은 국회의원, 돈 봉투에 연루된 정치인,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회의비를 챙기고 거수기로 전락한 이들은 또 어떤가! “오만한 엘리트들이 야만 사회를 만든 주범”이라는 샌덜의 책이 잘 팔리는 이유가 이들의 행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들이 이리 설쳐댈 수 있는 근원은 분명하다. 공부 잘해 명문 대학에 들어가 출세의 길을 걷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공부 1등하고 출세하면 오만이고 거만이고 다 용서되는 나라가 돼 가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토양에서 자란 엘리트들이 검찰에서 누려온 ‘기소 독점주의’에 중독돼 ‘권력 독점주의’를 향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싶다.
더 큰 문제는 일부 관료들이 “자신이 누리는 부(富)와 권력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엘리트 자신도 ‘경쟁자만 보이도록 가르친 교육’의 피해자로 볼 수 있지만, 어찌 됐든 ‘거만 (倨慢)하다’는 비판과 함께 “정치와 국격이 이리 빨리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응답하라” 되받아치는 거만한 정치 여기서 멈추라. 부족하면 채우는 정치를 하라. 국민의 자존감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데 매진하는 것이 답이다. 그래야 갈등이 멈추고 ‘퇴진’이라는 단어가 사그라진다.
마이클 존스턴은 “엘리트들의 카르텔 부패는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제도가 미숙한 나라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엘리트들의 카르텔이 힘을 가진 것은 학맥과 인맥으로 엮인 고위층 인사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엘리트들은 조직의 기득권 보호에 탁월하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부터는 발밑도 보고 먼 미래도 살피고 2등도 인정하고 꼴찌의 말도 들어야 한다. “학력보다 성장 능력, 개인적인 성공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그지바치(폴란드 출신, 일본 거주)가 쓴 책 ‘뉴(new) 엘리트’를 이해하는 것도 “지도자들이 취해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이를 귓등으로 듣는다면 거만이 키운 자충수에 넘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태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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