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참으로 부끄럽다. 잊을만하면 합동분향소가 설치되는 나라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부끄럽고, 이 땅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젊은이들의 목숨을 너무도 황망하게 앗아가는 나라, 국민의 안전보다 이전투구에 시간을 허비한 꾼들을 저지하지 못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어른으로서 핼러윈 참사 희생자분들께 머리 숙여 속죄의 마음으로 깊은 애도를 표한다.

기자로 살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했다. 그런데 코앞에서 이게 뭔가! 무슨 이런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났단 말인가!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이러다 죽겠다”라는 두려움, 죄어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공포에 떨었을 젊은이들을 방치한 죄, 그들을 길 위에서 죽게 한 죄, 담요에 덮어져 길가에 누워있는 젊은 시신을 봐야 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수수방관한 죄. 나는 죄인이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계속된 안전 불감증에 대해 미안하고 삶의 현장에는 늘 국가가 있고 사고현장에는 늘 책임자들이 긴밀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희망 고문을 갖게 해 정말 미안하다. “압사될 것 같다”고, “살려 달라”고, “장난이 아니다”고 현장 소식을 절규로 호소했던 젊은이들의 신고를 묵살한 죄책감, 그들의 짝 잃고 흐트러진 수많은 신발을 보면서 손이 떨리고 가슴이 저미어 옴을 감출 수가 없다.

기자라는 직업 땜에 참사 소식에 본능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힘든 모습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다가간들, 비통한 소식을 먼저 전한들, 먼저 걱정한들, 빨리 손을 써야 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죄’에 대한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고가 나던 날, 자식을 찾겠다고 넋 나간 모습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뛰어다니던 엄마와 아빠, 결국 영안실에 누워있는 딸을 확인하고 울부짖는 한 중년의 처절한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순간, 기자가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한 아비로서 찢어지는 가슴을 달래야 했다. 사고 원인도, 대한민국 안전관리에 구멍이 난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10만 명 이상이 모이는 장소에 안전이 우려되는 것을 알고도 수수방관한 책임자들의 부재와 딴소리다.

“토요일 집회 때문에 경찰력이 분산돼서 그렇다”고? “소방관이나 경찰이 배치됐어도 피할 수 없었다”고? “주최 측이 없어서 책임이 없다”고, “선동하지 말라”고? 집어 치워라. 그 시각에 경찰청장은 뭐 했고, 112상황실장은 왜 자리를 비웠냐고 이젠 묻고 싶지도 않다. 무능한 책임자가 힘을 얻으면 괴로운 건 국민이다. 더 이상 국민을 저주스럽게 만들지 말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한 책임자는 광화문 대로에서 석고대죄하는 것이 답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민족이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생생하다.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운 배가 뱃머리마저 바다에 가라앉아 버리던 날, 밤새 뜬눈으로 소식을 기다리던 한 아버지가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며 흘리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처절하고 애통한 심정을 기사로써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위로의 말도 차마 하지 못했다.

팽목항 모서리에 서서 “한 생명이라도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며 간절히 빌었다. 아니, 더는 버티지 못한 생명이라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부모 형제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몸속의 모든 세포를 파고들었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살면서 이번 생애 마지막 기사가 될지라도, 제발 기적이라는 단어로 기사를 송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로부터 오늘, 우리는 또 슬프고 힘들다. 참사를 당한 가족과 친구, 친척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황망하고 참담하다. 서울 한복판 길 위에서 희생된 156명의 죽음 앞에서 세월호 참사 그때와 똑 같이 여전히 손을 쓰지 못한 ‘방관의 죄’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괴롭다.

그래서 묻는다. 기간을 정해 놓고 함께 애도하면 끝나는 일인가? “응답하라” 1주일 동안 슬퍼하고 위로하면 되는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그대들이 시키지 않아도 슬퍼하고 위로할 줄 안다. 가슴 아파하며 머리 숙일 줄도 안다. 답은 하나다. “책임지라” 그것이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젊은이들과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게 하는 답이다.

젊은이들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슬프지 않고 자책하지 않는 국민이 있겠는가! 이쯤 되면 분노하지 않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러나 참자. 지금은 인내하는 시간이다. 희생자 가족에게 다가가 애도를 표하는 시간이고 슬픔을 나누는 시간이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주위 분들과 침묵으로라도 말하고 교감하는 시간이다. 고통의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고통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고 괴롭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다.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