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매력을 가졌다면 죄가 될까?” 죄가 된다. 중세유럽에서는 그랬다.
빅토르 위고가 쓴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에스메랄다처럼 15세기를 전후해 유럽에서는 권력자의 질투를 유발하는 매력을 가졌다면 ‘마녀’(魔女)라는 이름을 붙여 죽여 버렸다. 요염(妖艶)하면 죽음이었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도 마녀로 몰려 세상을 떠나야 했다. 한때 유럽에서는 군중에 의해 만들어진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해 불에 태워 죽인 야만의 역사가 있었다. 이른바 마녀사냥(witch-hunt)이다.
마녀사냥은 자신과 뜻이 다르거나 반대편에 있으면, 일단 이단(異端)으로 몰아 온갖 추접스러운 덜미를 씌워 제거해 버리는 수단으로 활용했는데, 여기에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3자로 하여금 매장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 직설하면 여론을 이용한 방식이다.
여론을 주도한 언론매체가 그래서 위험하다.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인터넷에 정보를 흘리면 노출된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여론몰이가 시작된다.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신상 털기는 기본이다. 인간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사적 영역까지 파고든다. 이를 견뎌내지 못하면 피해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 역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시청자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걸려들었다 하면 변명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패널들의 입놀림은 선량한 국민의 의식을 파고든다. 이른바 서브리미널(subliminal)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라틴어 서브(sub·아래)와 라이멘(limen·문지방,발단)의 합성어인 이 효과는 사람들이 감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뇌에 자극을 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는 영역, 즉 잠재의식(subliminal)을 파고들어 목적한 것을 입력시켜버린다.
독일 나치스의 아돌프 히틀러가 언변(言辯)으로 인간의 의식을 활용한 것과 같은 것으로 “99개의 거짓에 1개의 진실을 섞어 말하면 진실만을 말할 때보다 효과가 크다”는 괴벨스의 논리와 비슷하다. 레닌(Lenin)도 “혁명의 성공을 위해 용어를 혼란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파고들어 헷갈리게 해야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불특정다수(不特定多數)의 잠재의식을 겨냥한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를 노리는 여론몰이, 말하자면 마녀 프레임의 전형이다.
요즘 여야의 공방이 서브리미널 효과를 노린 듯해서 얄밉다. “바이든과 날리면”으로 대립하더니 “친일, 친북”하면서 ‘아무말대잔치’에 국민을 끌어들이고 있다. 각 진영의 대변(代辯)을 보면 먹잇감을 향해 달리는 맹수처럼 보인다. 저질러놓은 변(辯)을 놓고 벌이는 대변인(代辯人)들의 변(辯)이 시간이 갈수록 변명(辨明)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잠재의식을 파고드는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situation)은 뭘까!
아무튼, 변(辯)이 누구를 향하든 간에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아무리 “나치스의 언변술이 대중에게 통한다”하더라도 이번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그것은 진짜 바보도 안다.
가공된 ‘허위 팩트(fact)’라 하더라도 결국 선동에 따라 선량한 군중들이 진짜 화를 내고 비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비난을 하는 모든 군중이 여론에 휩싸인 인물에게 돌을 던지는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동에 나선 꾼들은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세고 지금이고 권력자들의 갈등을 좀 더 들여다보면 “너는 반드시 죽인다”라는 막가파식 오기가 숨어있다. 코피 정도로는 안 된다. 이는 분풀이다. 보복의 악순환이다. 내가 아니고 남의 탓, 1인칭이 아니고 2인칭이나 3인칭 논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남의 다리를 긁어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문제가 내 탓보다는 남의 탓이라면 유럽의 마녀사냥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묻는다. 잠재의식을 노리는 마녀사냥,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편싸움이 그대들 세상의 약육강식(弱肉强食) 리그(league)인가? “응답하라”. 맞는다면 나뭇가지를 날아 건너는 다람쥐를 새(bird)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메뚜기도 새다!
마녀사냥을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막힌 곳이 있으면 뚫어 달라는 것이고 구부러진 곳이 있으면 펴 달라는 것이다.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절박함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선봉’에 지도자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고, 자기 뜻과 다르다고 법정에 세워 심판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국가발전, 경기회복에 힘을 모으라는 주문이다.
이제 잔 다르크에 돌을 던진 군중도, 히틀러의 언변에 휘둘린 나치스의 역사도, 텔레비전, 인터넷의 마녀사냥에 편승해 이간질에 동참한 주구(走狗)들도 스스로 반성하고 지혜를 모아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마녀로 찍히면 무조건 죽어야 했던 야만의 역사, 마녀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50만 명에 이르는 중세 유럽역사를 바로 보지 못한다면 자신도 언젠가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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