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 5·18정신 헌법…‘그 입 다물라!’

묻지 않았다. 이때가 되면 왜 눈이 벌게지는지! 그게 암울한 시대 함께 한 자의 배려라 생각한다. 이렇게 올해도 광주에 5월이 왔다. 1960년 전후 태어난 또래들은 박정희 정권 말기에 대학에 들어갔고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에 사회에 나왔다. 그들의 학창 시절은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밖에서 시국을 논하는 시간이 많았다.

직장에 들어갔어도 설렘보다는 정권의 탄압에 맞서 분노하는 일이 잦았고 최루가스를 몸에 묻히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다반사였다. 메케한 냄새가 지금도 몸에서 나는 듯하고 해 뜨는 시각부터 해 저무는 시각까지 어쩌면 잠들어 있던 시간까지도 백골단의 만행이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당시 ‘사복 체포조’를 ‘백골단’이라 불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보호를 위해 흰색 헬멧을 쓰고 사과탄(투척용 최루탄)과 방독면이 들어있는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시위대에게 몽둥이질은 물론 쓰러지면 짓밟기, 닭장차에 가두기 같은 못된 짓을 했다. 그들의 신분은 대한민국 경찰이었다.

80년 후반에는 시위현장이 취재현장이었다. 현장취재를 위해 “취재”라고 쓰인 천으로 만들어진 완장(시민단체 지급)을 팔뚝에 차야 했지만, 주머니에 넣어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분노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군중의 중간이나 후미에 섰을 뿐이지만 백골단이 접근해 오면 보도블럭을 만지던 손으로 취재수첩을 꺼냈던 기억이 새롭다.

그 기억의 언저리에 KBS취재차가 불타는 현장도 남아있다. 광주에 있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다. 누군가가 “KBS다, 죽여”라고 소리를 질렀고 곧바로 차가 불타기 시작했다. 언론 불신에 대한 분풀이 대상이 취재차 전소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차에 타고 있던 취재진이 다치지 않도록 길을 열어준 시민들이 있었고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존엄(尊嚴)이 존재했다.

아무튼, 백골단의 독기는 날이 갈수록 더 했다.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진압경찰의 광기를 피해 광주 대인시장과 연결된 골목의 어느 집으로 피신했다. 거실과 안방에는 눈물, 콧물, 기침 소리가 난무했고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닦던 걸레로 더 힘들어하는 옆 사람의 얼굴을 닦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집주인은 망가진 대문 틈을 통해 밖의 동태를 살피며 마당 한쪽에 있던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넣어 주셨다. 그때까지 주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물이 든 스테인리스 밥그릇과 바가지를 마루에 놓을 뿐이었다. 웅크리고 있던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잘 가라”는 말도 “조심 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마실 물을 건넨 과묵한 그분의 맘이 광주인의 맘이고 5월을 잇는 맥(脈)이 아닌가 싶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광주는 아프다. 염장을 지르는 자들 때문이다. 5월 광주를 헌법에 넣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43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눈치 볼 것이 남아있는가! “응답하라” 진정성의 파편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다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더러운 입,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그저 얻어지는 것이 있겠는가? 오랜 기간 망가져 있던 이념(理念)의 틀 속에 구겨진 시간, 그 시간을 넘어 갈라진 이념을 하나로 묶는 것, 그것들을 녹여 5월 정신을 바로 놓는 일, 그 일들이 너무도 많기에 인내(忍耐)라는 화두를 던지며 또 한 번의 5월을 맞는다.

적(敵)과 동지 같은 굳어진 정신 속에 새겨진 이념, 그 이념이 녹아야 생성되는 ‘통합(統合)’이라는 열매는 소탈함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고, 양보한다고 이뤄낼 일 역시 아니며, 힘의 논리로도 풀어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광주 사람들은 그 일들이 흘러간 세월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에 올해도 ‘5·18정신 헌법 수록’이라는 숙제 앞에 초연함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 불의에 저항했던 이들이 이제 정년을 맞거나 환갑을 넘어, 나이 들어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이들 중에는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5·18 유공자’ 신청마저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야사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생(生)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도 얼굴도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에서 멀어지는 주먹밥을 나눠준 광주의 딸과 어머니들, 한 명이라도 살리겠다며 자신의 피를 헌혈한 뒷골목 여성들, 치마폭에 쫓기던 학생을 숨겨 준 이불집 할머니, 눈가에 바르라고 치약을 짜 주셨던 아저씨, 그들과 같이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며 소설과 같은 팩트를 정리하고 있는 지금,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이들의 삶이 야사가 아닌 역사의 한편으로 기록되길 바라면서 2023년 5월의 편린(片鱗)을 칼럼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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