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순식간(瞬息間)이다. 새 정부출범이 그렇다. 국민이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 자리로 발령한 뒤, 눈 깜박할 사이에 벌써 한 달! 대통령의 시간이 흘렀다. 평가는 지금부터다.
이 평가에서 책임을 벗어나기 힘든 지역이 광주다. 21대 대선 이재명 후보 광주 득표율 84.77%가 그렇다. 전남은 10명 중 8.5명이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고 완도는 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투표율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제15대 대선 다음이다. 5년 뒤 "혹독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데 광주사람들은 대통령으로 이재명 후보를 지정했다.
그럼, 광주는 왜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을까? 그 중심에는 트라우마가 있다. 계엄과 독재에 시달린 공포와 차별, 홀대를 겪지 않기 위해, 겪더라도 덜할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차시에 이재명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21대 대선에서 이 후보의 광주득표율이 미미(微微)하게나마 20대 대선보다 낮은 이유다. 답은 지난해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총선에 있다.
"도대체! 전라도 인재를 왜?" 지난해 총선 전후 나온 소리다. 그럴만한 후보들이 민주당공천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그 서운함이 이재명 후보 지지율 감소로 나타난 이유다. 새로운 인재 발굴 차원이라면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이 누군지에 대한 감(感)이라도 잡을 수 있어야 했다.
서울 민심도 그렇다. 21대 대선은 보수당 대통령이 일으킨 계엄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수 측 후보득표율(51.49%)이 진보 측(48.40%)보다 높다. 이 성적표는 계엄과 무관한 ‘자존감 복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에서 배제될 대상인가! 그도 아니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자기부정 탓인가!
광주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상실감이 크다. 차기 인물군(人物群)에 호남 출신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이재명 정권이 끝난다 하더라도 집중 부각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래서 묻는다. 광주를 대표할 지도자가 누군가? "응답하라" 5·18의 성지, 민주화 운동의 본산이라는 자부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는 리더, 차기 대한민국을 책임질 지도자가 누군지? 광주가 묻고 있다.
영웅은 위기에서 탄생한다. 잔 다르크가 그랬다. 계몽주의 정신 ‘톨레랑스’의 상징인 프랑스는 600여 년 전, 백년전쟁이라 불리는 영국과 싸우면서 경제가 바닥이었다. 당시 프랑스 지도자 샤를 6세는 통치력을 잃었고, 이때 나타난 이가 잔 다르크다.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을 물리친 잔 다르크의 판단은 프랑스 국민을 지키기 위한 병사들과의 약속으로 국민에겐 승리를 선물했다.
이순신 장군도 마찬가지다. 430여 년 전, 목숨으로 나라를 구한 장군은 친구인 사헌부 현덕승에게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글을 보냈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여수 오동도 입석에 새겨진 이 문구는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다! 호남의 정치적 판단을 하대(下待)하면 이재명 정권의 성공은 물론, 다음 선거에서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역대 선거를 보면 필승의 시발은 광주였다. 그 중심에는 김대중이 있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문제는 ‘광주의 성향과 정당의 이념적 성격’이 김 전 대통령과 궤(軌)를 같이하는 인물, 그 정신을 이어갈 호남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또 키워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1996년 총선에서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는 호남의 37석 중에서 36석을 쓸었다. 호남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 해에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광주가 선택한 노무현의 승리로 이어졌다. 2007년 정동영 후보의 패배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호남에서마저 참패였다. 호남 민심을 읽어내지 못한 후보의 대선 출마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였던 셈이다.
2012년 18대 대선도 그랬다. 사실상 문재인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였는데도 고배(苦杯)를 들었다. 지난 일을 들먹이면 부질없는 넋두리에 그칠지 모르지만, 내일의 발판은 어제이기에 잠시 기억을 재생하고자 한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표와 광주지역 언론사 보도편집국장의 만남이 있었다. 이때 화두는 ‘인재’였다. 국장들은 "노무현 정권, 청와대 실세 때 ‘호남인을 커트’한 이유"를 물었다. "아니"라는 변명 속에 반성의 기미를 보인 문재인 대표의 당황스런 답변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에서 기대하던 호남 후보의 커트, 여기서 나온 호남인들의 서운함과 안타까움,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호남 민심 이탈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오랜 기간 광주는 민주당과 함께했다. 민중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화였고 기득권 타파였으며 기울어진 지역발전 해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은 특정 정당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함께 가야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스미고 있다.
아무튼, 광주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 때는 밤새워 울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련에는 함께 아파했다. 한(恨)을 되새김질하며 그랬다. 그래서 위로해줄 대통령, 위로해주는 정치가 지지를 받게 되는 구조가 광주다. 이젠 민주화의 성지로서만 광주가 아니라, 민생의 핵심을 찾아 이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도시가 광주다.
길이 멀어도 가야 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광주가 그렇다. 총선의 서운함에도 광주는 배신하지 않았다. 달팽이처럼 명분(名分)을 찾아 가야 할 길을 간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이젠 "호남 소외는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다. 첫 단추는 인재등용이다. 그런 다음 인재를 다듬는 일이다. 이게 호남 민심 복원의 편린(片鱗)이다. 광주는 아직 광주를 구할 잔 다르크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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