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뭐가 발목을 잡고 있는지? 계속 저러고 있으니 미치겠어요." 한집에 살면서 아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산다는 60대 어머니의 푸념이다. 궁금하고 답답하지만, 아들 방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부모. "모든 걸 포기할까 봐, 그것이 두렵다"는 ‘쉬었음’ 자식을 둔 부모의 간절함이 전해지는 가을이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있는 ‘쉬었음’ 청년이 지난 7월, 30대가 31만2천 명이다. 통계청 발표가 그렇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20대 ‘쉬었음’ 청년도 42만1천 명으로 전년보다 5천 명이 늘어나 역시 최고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쉬었음’ 청년 10명 가운데 7명(75.6%)이 ‘구직 의사가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으며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부모다. 지난 7월, 돈벌이에 나선 60세 이상은 700만8천 명으로 전체 노인 1천460만 명을 감안하면, 2명 중 1명꼴이다. 주목할 점은 60세 이상 노인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0세 이하 청년층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그럼 ‘쉬었음’ 청년은 왜,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을까!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이유다. 맞을까?
서울대학교 곽금주 교수는 "마땅한 일자리가 제한돼 그로 인한 괴리감과 반복된 실패 경험이 청년들을 그냥 쉬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서 기대 수준이 높아졌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쉬었음’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취업의 눈높이를 낮추면 되지 않나?"라고 물의면 아재 생각일까!
물론, 핸드폰 하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인터넷환경이 ‘쉬었음’을 낳는 요인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물가도 이들이 지레 포기한 이유 중 하나다. 평균연봉이 4천800만 원인 30대가 9억 원짜리 내 집을 마련하는데 서울에서 19년이 걸린다. 경기도는 10년이다. 이러니 청년들이 미리 나자빠져 버린 결과가 ‘쉬었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면서 이직(移職)이 늘어난 것도 ‘쉬었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면 ‘실업수당 챙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그렇다. 이런 사고가 일손이 부족한 농촌, 인재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간과(看過)하게 만든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질 40가지 직업을 꼭 찍어 공개했다. 여기에는 판매원, 기자, 번역가, 역사학자, 작가 등이 포함된다. 이 직군은 AI 기술의 대체 가능성이 높다는 게 MS 측 설명이다.
미국의 AI 기업 앤트로픽 CEO는 "사무직 일자리 절반이 5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최고디자인책임자도 "AI가 10년 안에 사무직을 대체할 것이며 심지어 훨씬 더 저렴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AI 기술노출이 심한 서비스와 회계 같은 직종에서 22∼25세 청년층 고용률이 2022년 이후 13%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AI 혁명의 ‘초기 증상’으로 특히 젊은 세대가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LG화학과 롯데케미칼 공장 일부가 문을 닫은 데 이어, 지난달에는 여천NCC 3공장도 가동을 멈췄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석유화학 공장 10곳이 폐쇄된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나프타분해설비 생산량을 최대 25%까지 감축하라며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그만큼 청년층 취업문이 좁아진다는 이야기다.
최근 한해 1조 원 안팎의 정부예산을 쏟아부어도 ‘쉬었음 청년’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다운증후군 정은혜 작가는 SBS 동상이몽에서 23살 때 처음 "사람 얼굴을 그리면서 사람들과 대화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동굴’ 같은 방에서 단절된 채 살다가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신랑과 함께 꽁냥꽁냥 사는 예쁜 모습을 보였다. ‘쉬었음’ 청년은 은혜 씨의 고립과는 양상(樣相)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어떤 이유이든 고립된 청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지영 작가는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며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순리를 강조했다. ‘쉬었음’ 청년의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치권을 보면 ‘쉬었음’ 청년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청년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드러나지 않고, 극단(極端)만 보인다. 악수도 하지 않는 여야, 꽈배기처럼 뒤틀린 이들이 남긴 메시지는 일자리가 아니라 극단의 오기(傲氣)다.
그래서 묻는다. 청년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뭔가? ‘쉬었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제공할 일자리 창출 대책을 묻고 있다. "응답하라" 민생회복소비쿠폰은 답이 아니다. 와닿지도 않는 상복(喪服) 차림 국회도 마찬가지다. ‘들리지도 않는 말’ 그만하고 악수하고 머리를 맞대라. 그래야 ‘쉬었음’ 청년 10명 가운데 7명이 다시 은둔에 빠지는 수(數)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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