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50 대 50"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가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뚜껑을 열지 않고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둘 수는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탄핵 찬/반이 담긴 상자 뚜껑을 열기로 했다.

로마의 한 작가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수천 년을 이어온 이 속담에서 무시된 건 ‘이끼’다. 돌을 괴롭히는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돌도 마찬가지다. 이끼의 삶을 짓밟은 상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끼와 돌이 공생(共生)하는 방법은 뭘까! 원칙을 놓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어느 입장이냐에 따라 ‘생각 존’이 다르게 형성되기에 상대 입장을 고려해 답을 찾는 것이 ‘공생’이고 여기서 나온 단어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돌과 이끼는 물론, 대통령 탄핵에 따른 갈등도 마찬가지다.

탄핵 찬/반을 놓고 "너 이거 이해 못 하면 개·돼지다"는 언어폭력으로 이른바 ‘탄핵이혼’ 상담을 했다는 양소영 변호사의 말처럼 정치적 견해(見解) 차이는 우리 사회 근간인 가정까지 흔들고 있다. 친구와 싸우고 이웃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이런 시국을 감내(堪耐)하기가 힘들기"에 이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고양이가 든 상자를 열지 않고 주춤거렸던 시일만 줄였어도 갈등은 더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살았든 죽었든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놔야 타들어 가는 국민의 마음이 달래 지고 불안이 사그라지는데, 솔직히 ‘조급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를 보면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의 권력부패가 적나라하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자라는 ‘이끼’는 영화에서 죄를 숨기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추한 모습으로 비유된다. 이 영화가 개봉 15년이 된 지금은 물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왜곡과 갈등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은 것은 민주사회를 향한 국민의 양심이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인물과 지금 우리는 뭐가 다를까? 권력을 놓고 벌이는 진실 공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화 ‘이끼’는 권력욕이 우리 사회에 끼친 ‘악한 영향력’과 인간 본성에 따른 ‘선한 영향력’이 뭔지를 묻고, 민주사회 구현을 위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같은 극한 혼란은 ‘관점의 차이’가 빚은 결과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도덕과 법률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갈등이 첨예한 상태에서 이 둘의 경우 어느 한쪽에 의해 무용지물(無用之物) 취급을 받기 쉽다는 점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갈등을 키우는 대통령의 탄핵상자, 고양이가 든 상자를 열기로 한 이상, 그 결과를 따르는 게 순리가 아닌가 싶다.

법이 애매하게 적용하면 혼돈이 잉태되고, 혼돈은 불신을 낳는다. 불신은 ‘이끼’를 무시하고 돌의 입장만 가르친 우리 교육이 남긴 허점에서 기인(起因)한 것이고 ‘괴물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가 굳어져 생긴 ‘배려심(配慮心) 백지’가 자초한 일이다.

‘괴물 엘리트’ 중심으로 가면서 디폴트 돼 버린 교육이 그래서 심각하다. 여행을 가지 않고 학교에 나오면 ‘개근거지’ 취급을 받는 체험학습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해외를 다녀왔다는 것이 자랑인 환경, 국내 여행도 가지 못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분위기, 이 같은 배려 없는 교육환경이 안하무인(眼下無人) 엘리트 독존(獨尊)이 득세하는 세상을 낳고 말았다.

출석 잘하는 아이가 ‘개근거지’ 놀림을 받는 환경이 맞는가! 친구를 폄하하는 공교육이 존재하는 한 ‘공공의 이익’ 개념은 ‘공공의 적’으로 변할 것이요, 극단(極端) 전파를 부채질하는 정치가 있는 한, 그리고 이끼와 돌을 놓고 한쪽만 대변하는 괴물 엘리트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인간 존엄을 떨어뜨리는 삶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4월 4일, 저울질은 여기까지다. 지금과 같은 갈라치기 세상은 ‘악마의 혀’로 불린 선동(煽動)의 달인 괴벨스만이 돋보이는 나치독일의 현상과 다를 게 없다. 나치당과 히틀러의 독재, 홀로코스트, 그밖에 단어가 떠오르지 않게 만든 선동의 끝은 선량한 국민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기다릴 뿐이다.

느닷없는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트럼프의 저돌(猪突)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2.1%에서 1.5%로 떨어뜨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2050년 지금의 10대 20대가 주역이 되는 날,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응답하라"

대나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서울-광주 고속도로 주변 대나무들이 집단으로 죽어가고 있다. 속설을 믿진 않지만 불길(不吉)하다. "시국이 어떤 SF 영화보다도 초현실적"이라는 ‘미키 17’의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상상도 못 했고 황당하고 불길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심기일전(心機一轉)으로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임대’라고 써진 상가가 줄고 ‘대나무의 속설’은 물론,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2050년에 아시아 최하위’로 떨어질 거라는 골드만삭스, 인구 감소로 ‘30년 안에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짐 로저스의 말이 "허무맹랑한 헛소리였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 증명을 위해 스스로에게 "응답하라"고 묻고 답하자. "내란혐의자가 군(軍)통수권자가 되는 게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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