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호(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제라늄이 베란다에서 핑크빛 꽃을 피웠다. 튤립도 파란 얼굴을 내밀어 주위를 살핀다. 봄이다. 봄볕에 식물들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꽃이 있는 아침,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가! 봄은 이렇게 우리에게 꽃을 보내 설렘을 선물하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다. 식물은 매서운 비바람을 버텨 꽃을 피우기까지 만반의 채비를 한다. 생존에 필요한 물과 햇볕을 어떻게 확보할지 궁리하고 봄이 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계산한다. 그래서 식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바쁘다.
요즘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수선화는 땅속에서 흙을 이불 삼아 겨울을 난다. 얼지 않을 정도의 깊이에 뿌리를 숨겨 두는데, 이는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유난히 긴 목을 뻗어 꽃을 피우지만 심한 흔들림에도 견뎌낸다.
‘매화’와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초록을 포기했던 지난해 가을을 뒤로 하고 뿌리에서 밀어 올린 꽃망울이 휘청거린 가지에 바짝 붙어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소식을 알린다. 이렇듯 식물들은 쉬지 않고 줄기에 수분을 보내고 뿌리에 영양소를 저장해 새날의 번식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들 식물 역시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듯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다. 도시화에 따라 종(種)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천으로 핀 꽃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마음이 허(虛)하다는 사람이 많다.
성창경 시인은 “개망초꽃도 안개꽃처럼 누군가를 감싸 안을 때 보다 예쁘게 피어난다”고 했다. “들판에 흔하게 피어 농민들을 힘들게 하는 개망초도 다른 꽃과 함께 서로를 감싸 안을 때 더욱더 아름답게 피어나게 한다”는 시인의 글에서 우리는 어울림의 미학(美學)을 찾는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시작이 그랬다. 순천만 갈대와 어울리는 것, 그것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15년 전 ‘순천만 습지보존’을 고민하던 노관규 시장은 갈대밭 취재에 나선 필자와 인터뷰에서 ‘갈대와 어울리는 뭔가가 있어야 도시가 발전한다’는데 공감했다. 그 뭔가가 정원이었다. 2008년 한해 150만 명에 이르는 순천만을 찾은 관광객에게 갈대와 꽃의 어울림, 생태 정원을 선보이는 안이었다.
석양이 아름다운 것은 구름이 있기 때문이듯 갈대와 꽃이 어우러진 도시, 그게 정원의 도시라고 믿었다. 이 같은 한 지도자의 꿈은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탄생시켰고 10년이 지난 지금, 관광객 800만 명을 목표로 하는 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척박한 돌 틈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식물들처럼 방치된 바닷가 뻘밭에 흙을 돋우고 땅을 일궈 각자의 이름을 걸고 한 폭의 식물을 심고 가꾸어 정원을 만들었다. 겨울에 엽록소 생산을 줄여 삶을 지탱하는 식물들처럼 정원의 생명력 유지를 위해 작은 정성들을 모아 지금에 이르렀다.
순천정원박람회장에 달팽이 모양의 정원이 있다. 이 정원은 순천시 공무원 나옥현 씨가 다리난간에 뿌리를 내린 제비꽃의 생명력과 같은 끈질김으로 세계적인 작가 스코틀랜드의 ‘찰스 쟁스’를 영입해 만든 작품이다. 편지를 쓰고 메일을 보내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이룩한 성과다. 그래서 순천의 정원은 말단 공직자부터 할머니들의 호미질까지 혼(魂)이 들어가 있다.
캐나다의 ‘부차드 가든’(Butchart Gardens)은 방치된 채석장에 부부가 꽃과 나무를 심어 만든 정원이다. 세상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꽃과 나무가 그 정원에 있다. 2011년 취재차 만난 부차드가(家)의 손자는 정원을 안내하면서 “정원을 가꾸는 것은 혼(spirit)을 쏟는 끝없는 작업”이라며 “그 주인공이 되라”고 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모두가 정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사람이 정원의 주인공이고, 혼을 쏟아 미(美)를 창출하는 장인(匠人)이 아니겠는가!
순천에 가면 정원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꽃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꽃을 피우는 곳이다. 골목 자투리땅에도 꽃이 있는 늘 봄 같은 곳, 정원에서 웰니스(wellness) 상태로 살고 싶다면 그곳에서 봄을 맞은 것도 꽤 괜찮을 듯하다. 무심코 키우던 식물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하는지를 볼 것이고, 각국의 정원을 접하면서 나만의 정원을 상상하고, 설렘을 키우는 봄날이 될 것이다. 이것이 2023년에 또다시 정원박람회를 여는 이유 중 하나다.
윤리철학을 만든 에피쿠로스는 “공포로부터의 자유, 고통 없는 삶을 위해 즐기라”고 했다. ‘자기도 꽃’이라며 꽃봉오리를 여는 꽃들이 있는 봄, 반려식물을 만나 지친 몸을 달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힐링(Healing)하는 새날이면 좋겠다. 그런 뒤 스스로에게 “응답하라”. ‘꽃이 있는 행성, 지구에서의 시간이 아름답고 행복한가?’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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